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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두 번째 이야기: 천안함의 시간

2021/6/30 13:07
조회:1769





이 시계는 천안함 생존자 전준영 씨가 폭침 당시 차고 있던 것으로, 원래 고 이상준 중사의 것이다. 시계를 서로 바꿔 찼다가 준영 씨의 시계는 고인의 시신과 함께 발견됐다. 준영 씨는 고 이상준 중사 시계를 ‘천안함 그날 그 시간’에 맞추어 간직하고 있다. / 사진 제공 라미 작가


두 번째 이야기: 천안함의 시간

살아남은 사람들의 그날 이후. by 이영비


“천안함이 벼슬이냐?”

“패잔병이면 패잔병답게 닥치고 있으라고.”


6월호 ‘군대’ 편이 나온 지 얼마 뒤, 천안함 관련 이슈에 불이 붙었다. 그 불에, 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이 “(천안함 최원일) 함장이 생떼 같은 자기 부하를 수장시켜 놓고 본인은 승진했다”라는 과격한 말로 기름을 부었다. 망언의 우물에 마중물이라도 부은 듯, 천안함 생존자들을 향한 악플과 원색적인 비난이 다시 들끓었다. 도를 넘는 망언을 향한 분노도 팽팽하게 맞선다.

그 모습을 보니 천안함 생존자 전준영 씨가 들고 있던 피켓 문구가 떠올랐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마세요. 저희처럼 버림받습니다.” 생존 장병과 유가족들이 차가운 길 위에서 처절하게 외치던 그 말에 우리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사진 제공: 전준영)


얼마 전, MBC 〈PD수첩〉 ‘천안함 생존자의 증언’ 편에 지난 2월에 전역한 천안함 함장 최원일 대령이 침묵을 깨고 출연했다. 준영 씨 말에 따르면, 최 함장은 다정하고 세심하게 병사를 살피는 지휘관이었다. 최 함장은 폭침 당일, 배와 함께 가라앉을 각오로 침몰 직전까지 배를 살폈다. 그런 그를 부하들이 겨우 설득해 가장 마지막으로 구조했다. 살아남은 이후의 세상은 어쩌면 그날 밤보다 더 차갑고 혹독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그를 무책임한 패장이라 부르며 그의 ‘살아있음’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위기의 군인에게 생존과 무사 귀환보다 더 중요한 미션이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46명의 부하를 잃은 함장으로서 당시를 설명하는 모든 게 변명 같이 느껴져 11년을 참았다.” 그런 그가 〈PD수첩〉에 밝힌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천안함 폭침 전부터 이미 북한의 이상 징후가 포착됐고 위에 보고도 됐지만, 상부에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기무사령관은 폭침 2, 3일 전에도 국방부 장관에게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라”라고 충언했지만 소용없었다. 또 다른 이야기. 천안함은 사고 직후 ‘배가 좌초됐다’라며 구조 요청을 보낸다. 아비규환에서 다급하게 튀어나온 이 ‘좌초’라는 말은 훗날 천안함 좌초설의 빌미가 된다. 그런데 당시 최 함장은 상황 파악 후, 상부에 “북한 어뢰로 사료됨, 배가 지금 침몰 중임, 구조 요청 바람”이라며 곧장 일관된 보고를 올렸으나, ‘북한 어뢰로 인한 폭침’ 의혹은 처음부터 윗선에서 묵살됐다. 당시 6.2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천안함은 정쟁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 소용돌이에 휘말린 유가족과 생존자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진보는 외면했고, 보수는 이용만 했다.” 최 함장의 말이다.



천안함 생존자 전준영 씨(왼쪽)와 전 천안함 함장 최원일 대령.


생존자 대부분은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감정이 복받치고, 숨이 막혔다. 그들 대부분은 심각한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다.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 공황장애, 폐소공포증을 겪으며, 자살을 생각하거나 심지어 실제 시도를 한 이도 있다고 한다. ‘살아서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그들의 눈물을 어떻게 닦아줄 수 있을까? 시작은 이념과 정치적 입장을 떠나 차분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천안함 두 번째 이야기, ‘천안함의 시간’에서는 생존자 전준영 씨의 입을 통해 그날 이후 생존자들의 시간을 되짚어보고, 후배 군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다. 



맥심 인터뷰에 응한 이유가 “군인 후배에게 보훈 관련 현실을 알려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천안함을 계기로 알게 된 보훈 관련 문제점이 많다. 이런 큰 사건을 겪은 우리도 11년이나 지났지만 이렇게 힘든데, 한둘이 다친 더 작은 사건의 피해자는 얼마나 힘들겠나. 보훈 관련 컨퍼런스를 열면 그런 아픔을 겪은 분들이 오셔서 “천안함이 부럽다”고 하신다.


천안함이 부럽다?

“준영 씨는 누가 이야기도 들어주고, 국회의원이 와서 만나주는데 우리는 안 된다.” 군 의문사로 아들을 잃은 어떤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나만, 우리만 생각하지 말고 이 친구들, 후배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고민하자고.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는 친구들이 많다. 큰 병원 가라고 하루 이틀만 빨리 말했어도 살 수 있던 경우, 몇십 년째 말해도 씨알도 안 먹히는 억울한 사건... 이런 일이 많다. 그런 상황에 처한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걸 하려면 그전에 ‘천안함’이 정리돼야 한다. 천안함이 되면 다른 국군 장병에게도 훨씬 일이 수월해질 거다.


군인 후배에겐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군대에서 다치지 마라. 챙겨주는 사람 없다. 꼭 증거를 남겨라.” 겪어 보니 어디서 어떻게 다쳤다는 증거 확보나 제시도 어렵고, 아무도 그 절차를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아픈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데, 비용부터 입증까지 모든 단계가 만만치 않다. 우린 입대할 때 보안 관련 서류에 서명을 한다. 기밀 유출 안 하고, 하면 처벌을 받겠다는 거. 그런데 군에서는 “네가 다치면 군에서 책임진다” 같은 약속조차 안 해준다. 인력을 2년 동안 거의 무상으로 쓰는 건데, 막상 일이 터지면 다친 본인에게 누가 찾아와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여기 전화 돌리고, 저기에 돌리고... 나도 전화 뺑뺑이만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해맑은(?) 전준영 병장의 천안함 생활 모습. / 사진 제공: 전준영

그리운 천안함 전우들과 함께한 모습. / 사진 제공: 전준영


부상 후 보훈 지원을 받는 매뉴얼이 있지 않을까?

전혀 없다. 군대는 전술에만 특화된 조직이다. 장교도 잘 모른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극소수일 거다.


나라 위해 희생한 사람을 돕는 곳이 보훈처잖아?

군대는 아빠, 보훈처는 엄마 역할인데, 엄마가 계모다(웃음). 가면 눈치 주고, 우리를 사람이 아니라 ‘일’로 대한다. 언론에서 뭔가 터지면 부랴부랴 바꿔준다. 어떨 땐 줘도 되고 어떨 땐 안 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보훈과 국방에는 좌우 이념, 정치사상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데 말이다. 그래도 최근 천안함 생존자 중 유공자로 지정된 사람이 늘었다. 지금까지 총 13명이고 더 늘 거다. 계속 목소리를 내니까 들어주는 거다.


일 터지면 보훈처에서 알아서 찾아오는 줄 알았다.

한 예로, 천안함 전사자 46명 중 한 분이 8년간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고 문영욱 중사였다. 전사 후 화랑무공훈장 받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고도 만 8년 동안이나. 보훈처에서는 “신청이 안 들어와서 누락됐다”라고 했다. 고인에겐 유공자 신청을 해줄 직계 가족이 없었던 것이다.


모든 걸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군?

부상도 마찬가지다. 다친 사람이 알아서 입증하고, 서류 쓰고, 여기저기 방문해 제출하고, 기다리고, 전화 돌리고... 국가입증제로 바뀌어야 하는데, 갈 길이 멀다. 게다가 지금 우리의 보훈 제도는, 일단 검사비, 치료, 수술비는 내가 내고 나중에 나라에서 정산해주는 식이다. 천안함 생존자 신은총 형(하사)은 지금도 매달 치료비가 엄청 들어간다. 형이 큰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이면, 본인 돈으로 수천만 원을 선지급해야 한다. 성치 않은 몸으로 직업도 없는데 신용이 되겠나? 주위에 아쉬운 소리하고, 빚지면 이자 부담도 있고... 심적으로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럽겠나. 돌아버린다. 이게 국가인가?


천안함 사건 이후 대통령이 3번 바뀌었다. 뭔가 온도 차가 있나?

얼마 전까지 전상 수당이 월 2만3천 원이었는데 올해부터 9만 원으로 4배 오른다. 보통 6.25나 베트남전 참전 용사분들이 받고, 젊은 사람 중엔 제1, 제2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목함지뢰, 천안함, 그리고 아마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정도가 해당할 거다. 비록 이 정부가 국가유공자 초청 청와대 오찬 때 소책자에 그분들 남편, 자식 죽인 김정은 사진을 넣는다던가, 천안함 재조사 시도 뒤통수 등등 대북 정책 때문에 논란이 계속 있었지만, 비교적 그나마 유공자 인정을 더 많이 해주는 편이다.


천안함 전우회 회장을 맡은 전준영 씨는 지금도 군인을 포함하여 나라 위해 희생하신 사람들을 위해 기부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사진 제공: 전준영


앞으로의 준영 씨 행보가 후배 군인에게 큰 도움이 되겠군? 본인도 참 힘들었을 텐데.

나도 밑바닥에 우울하고 비참했던 적이 있지만, 꾸역꾸역 버티며 왔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내가 살아남은 걸까, 그런 생각도 든다. 전에 자동차 영업을 7년쯤 했다. 사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을 믿고 사게 만드는 것이 영업이다. 나란 인간 자체와 내 인생이 괜찮으면, 내가 겪은 일에 사람들이 더 공감하고 신뢰하게 될 거다. 그러니 떳떳하게 정말 잘 살고 싶다.


스무 살로 돌아가면, 군대 다시 갈 건가?

다시 갈 거다. 나는 정말 좋은 추억이 많다. 나를 희생할 가치가 있다. 힘들어도 고통을 이겨내면 좋은 추억이 남거든. 이등병 때는 힘들지만 병장 되면 편하잖아? 그 고비도 못 넘기면 사회생활 못한다(웃음). 그리고 군대 아직 안 간 친구들, 두려워할 필요 없다. 다 사람 사는 곳이다. 군대도 못 버티면 세상살이 못 버틴다. 나와 보니 세상이 군대보다 더 힘들더라. ‘폐급으로 살 거냐, 제구실은 하고 살 거냐?’ 누군가 물으면 답은 당연히 후자지. 이런 말이 있다.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 아니라, 포기했기 때문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 포기하지 마라. 지금 처한 현실이 너무 힘들고 출구가 없어 보여도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 분명 도와줄 이가 있다. 당신이 포기하지 않으면 나타난다. 나에게도 그랬듯, 누군가는 반드시 당신 손을 잡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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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IM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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