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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인터뷰]

2017/10/16 11:44
조회:9195

사진-리틀빅픽쳐스

배우 이제훈이 예사롭지 않은 행보를 보인다. 영화 '박열'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 운동가 박열의 삶을 조명한 데 이어 이번에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다룬 영화를 선택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이 통과되었던 지난 2007년의 실화를 휴먼 코미디 장르로 녹여낸 영화다. 8,000 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어 블랙리스트에 오른 할머니, 옥분(나문희 분)과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 분)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제훈은 나문희를 빛내주는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영화에서 이제훈이 분한 박민재는 평범한 직업인의 모습을 벗어나지 않는다. 민재는 위안부 문제를 알아달라며 구구절절 설명하지도 않고, 외치지도 않는다. 그의 역할은 옥분이 직접 입을 열 수 있게 하는 조력자다. 덕분에 옥분의 인생이 한층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제훈은 본인이 돋보이기보다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고 그 작품에 담긴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배우가 가진 영향력을 알기에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의 이런 생각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이제는 그의 선택이 주는 의미를 관객도 알아가고 있다.

'박열'과 '아이 캔 스피크'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연달아 했다.

하나둘 나이를 먹어가면서 작품 선택하는 데 있어 폭이 넓어졌다. 영화를 보는 재미가 일차적인 목표가 되겠지만, 의미 있는 작품에 출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역시 배우로서 자긍심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론시사회가 끝나고 박수가 나왔다. 옆자리에서 우는 소리도 들리더라. 영화 보고 어땠나?

울진 않았고, 뭉클했던 순간이 있었다. 청문회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에서 "하우 알 유?"라는 대사 굉장히 중요했다. 내가 워싱턴까지 촬영하러 간 이유가 그 대사 하나 때문이다. 영화 보면서 내가 내 목소리를 듣는데 짜릿함을 처음 느꼈다. 내 목소리가 들어간 "하우 알 유?"를 3번 듣고, 옥분이 힘을 얻고 미 하원들 상대로 이야기하는 게 귀에 하나하나 박히는 데 그때 눈물이 났고, 이를 연기하는 선생님이 훌륭해 보였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페이지를 넘기는데 옥분역에는 나문희 선생님이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안부 피해자의 사연이 나와서 굉장히 놀랐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마무리될까 궁금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봤는데 이야기가 따뜻해서 피해자 할머니께 위안이 되는 영화가 될 거라는 마음이 생겼다.

극 중에서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전 부치는 장면이다. 옥분이나 민재, 영재 형제도 가족이 없기 때문에 세 사람이 만나는 게 마치 대안 가족처럼 느껴졌다. 그 자리에서 옥분이 영어를 배우게 되는 사연이 알려지기도 하고. 할머니를 통해 동생에게 해주지 못했던 따뜻한 마음이나 가족이라는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외 옥분이 산소에서 엄마 이야기를 하는 장면도 좋다.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가족에게마저도 외면받아왔던 옥분이, 청문회에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엄마 산소 앞에서 넋두리하는 게 매우 인상 깊었다.
사진-리틀빅픽쳐스

'아이 캔 스피크'를 두고 '이제훈 보러 갔다가 나문희에 반해서 오는 영화'라고들 한다. 나문희 선생님의 연기는 진정 압권이었다. 함께 하는 것만으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조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고, 왕래했던 기회가 적어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떻게 내가 감히 선생님의 대사를 받아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막상 선생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니 마치 친할머니 같았다. 선생님이 나를 막내아들이나 손주 같은 시선으로 봐주셨다. 보통 연기하는 모습과 일상의 모습 간 괴리가 있기 마련인데, 선생님은 그게 없었다. 덕분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선생님이 순간순간 느끼시는 감정들이 소녀 같았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조금 다른 접근 방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우회적이지만 작품이 가지는 메시지는 명확하고 꽤 직접적이다.

그 부분도 걱정되는 점 중 하나였다.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작품들은 정공법으로 진지하게 접근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조금은 편안한 가운데 진한 감동을 추구하는 작품이다. 이런 부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께 누를 끼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나문희 선생님을 비롯해 함께 하는 분들에 대한 신뢰 덕분에 출연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더 감동하고 전율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였나?

물론 이미 학교에서, 교과서로 많이 배워왔다. 하지만 정보의 인식만 있을 뿐이지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반성하게 된다. 내 삶을 돌이켜 봤을 때 피해자분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날 때 그분들을 심도 있게 바라봤었나 생각하니 소홀했더라. 많이 반성했다. 그리고 아직 남겨진 피해자 할머니가 35분이 계시는데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역사를 지키고 기릴 의무가 있는 것 같다. 남겨진 세대로서 우리도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출연하게 됐다. 배우로서 연기로 참여할 수 있어 감사했고 그래서 자긍심을 갖고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마음도 크다.
사진-리틀빅픽쳐스

이런 걸 보면 배우가 지닌 영향력이 크다는 걸 느낀다. 

송강호 선배님이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말하셨다. 한 작품을 통해서 왜곡된 시선을 가진 분들에게 생각의 전환이 되는 계기가 된다면 배우로서 뿌듯할 거 같다. 그리고 난 대한민국의 배우다. 역사적인 이슈에 대해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영광이자 감사한 일이다.

'아이 캔 스피크'가 어떤 결과를 이뤄냈으면 좋겠나?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인식이 일본 젊은 세대들에게는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왜곡해 받아들이는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우리 영화가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분명히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 역사에 대한 바른 의식을 갖고 소통을 통해 이 위안부 문제가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일본 저격수'라는 수식어가 생겼다. 일본 팬에 대한 우려는 없나.


일본 팬들 때문에 걱정되지 않느냐고 많이 물어본다. 하지만 단순히 일본을 향한 공격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이야기하는 부분에 있어서 동참하고 또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예전에 차인표 선배님께서 '007시리즈' 북한군으로 캐스팅 제의를 받았는데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매우 훌륭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로서 자긍심을 가지신 일이니까.

무거울 수 있는 소재인데,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많다. 선 하나를 넘으면 자칫 희화화될 수 있다는 걱정이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당연히 톤 조절에 대해 걱정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관객분들이 '재밌게 신나게 봤어요'라고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제작진들 제작사 대표님 등이 작품을 함께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로 똘똘 뭉쳐져서 작품이 잘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참 행운이다. 각자 의견이 분분했다면 영화가 나왔을 때 문제가 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을 수도 있었을 거다. 만드는 사람들이 선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작품을 봤기 때문에 '아이 캔 스피크'가 잘 탄생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태도가 훌륭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사진-리틀빅픽쳐스

'탐정홍길동' 인터뷰 당시 '진지하고 재미없는 사람' '핵노잼 할배'라는 수식어에 대해 고민을 했었지 않나. 최근에 출연했던 '삼시세끼'나 이번 영화를 봤을 때, 그 문제는 극복한 것 같다.

많은 이들에게 재밌는 이야기로 웃음을 유발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 있어 이야기를 건네야 말문이 터졌다면, 지금은 낯선 이들과 있어도 내가 먼저 말을 많이 걸고, 이야기한다. 이 또한 영화를 찍어나가면서 스태프들과 많은 소통을 하게 되면서 변한 것이다. 그 전에는 그저 연기를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면, 지금은 넓은 시각으로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실없는 농담을 던지거나 스킨십을 통해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주면서 나 자신을 유연하게 만들었다. 이게 나의 연기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유가 좀 생긴 건가?

군 제대 후 '시그널'에 참여했을 당시, 진웅이 형과 혜수 선배님이 스태프들과 어우러진 모습을 봤다. 주연배우로서 연기를 잘하는 것은 당연하며, 같이 단결해 이끌어 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이후 작품을 하는 데 있어서 주연 배우에게 기대하는 바에 맞춰 배우로서 할 일만 하는 것을 넘어, 같이 영화나 드라마의 작은 부분에 있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 스스로 '이것이 내 작품이야'라는 의식을 갖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책임 의식 이외 같이 만드는 연대의식이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 경험해나가면서 유연해지고 여유로워지는 것 같다.

지난번 '박열'에 대해 애정을 품고 있다고 말한 적 있다. 이번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도 특별한 애정이 있을 것 같은데.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획기적인 제품을 보고 놀라운 순간도 있지만, 우리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숙제에 이런 영화가 뭔가 강요하는 게 아닌 진심으로 느끼고 우러나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거로 채워줄 수 있어 그 감정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시점에 필요한 영화 같다. '이런 영화를 기다렸어'라기 보다는 영화를 보고 '이런 영화를 보고 싶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한다. 위안을 받고 주변사람들을 둘러보고 위로를 할 수 있다면 각박한 사회를 조금은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걸 조금은 기대하고 있다.

사진 리틀빅픽쳐스 제공


 

MAXIM 장소윤기자 press@maxim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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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영화,개봉,연기,배우,감독,이제훈,나문희,위안부,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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